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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견의 기원: 장터 놀이에서 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
    택견 2025. 8. 17. 16:03

    한국의 전통 무예 중에는 전쟁의 도구로 발전하기보다 공동체의 유희와 생활 속에서 뿌리내린 독특한 사례가 있다. 바로 택견이다. 택견은 단순히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풀고, 웃음을 나누며, 마을 전체가 어울리는 장으로 발전했다. 그 시작은 권위 있는 무술 도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활발히 모이는 장터 놀이였다. 오랜 세월 동안 택견은 놀이와 경기, 그리고 민속의 한 형태로 전승되었고, 결국 오늘날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며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전통 무예가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택견의 기원과 장터 문화, 그리고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보며 한국 전통문화의 뿌리를 다시 조명해본다.

     

    택견이 장터 놀이에서 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의 과정

     

    장터에서 탄생한 민속무예, 택견

    택견의 역사는 궁중 무예나 군사 훈련이 아니라 민속놀이의 장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거래하는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어울려 문화를 즐기는 마당이었다. 농민과 상인, 아이들과 노인까지 모여 장터를 축제처럼 즐겼는데, 그 한가운데서 등장한 것이 택견이다. 택견 시합은 단순한 격투가 아니라 “품밟기”라 불리는 독특한 발 디딤과 발질을 통해 흥을 돋우며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구경꾼이 아니라 응원과 야유를 통해 경기에 적극 참여했고, 시합은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놀이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택견은 경쟁보다는 서로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즐거움을 추구했고, 이 때문에 큰 부상 없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택견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마을 청년들이 기량을 뽐내는 무대가 되기도 했지만, 농번기를 마친 농부들이 여가를 즐기는 방법이기도 했고, 심지어 아이들 사이에서도 소규모 택견 놀이가 전해졌다. 그만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무예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일본의 가라테나 중국의 권법처럼 특정 집단의 수련 체계에서 발전한 무예와 달리, 일상과 축제 속에서 성장한 문화라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택견의 놀이적 성격과 공동체적 가치

    택견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 그 자체보다 놀이적 성격과 공동체적 가치에 있다. 발차기를 날려도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오히려 관객과 어울리며 분위기를 띄우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 이는 전쟁이나 훈련에서 비롯된 다른 무술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부분이다. 택견은 힘과 승패보다 예절과 조화를 중시했으며, 시합 전후로는 반드시 서로 인사를 나누어 존중을 표현했다. 이처럼 택견은 한국인의 전통적 미덕인 상생과 배려를 몸으로 보여주는 문화였다.

     

    또한 택견에는 특유의 유희적 요소가 녹아 있다. 경기 도중 상대방이 넘어지면 관객은 환호성을 지르고, 선수들은 다시 일어나 웃으며 경기를 이어갔다. 때로는 과장된 몸짓으로 상대를 도발하기도 했는데, 이는 긴장을 풀고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치였다. 택견은 이렇게 놀이·연극·스포츠의 요소가 동시에 담긴 전통 활동이었다. 오늘날 스포츠가 기록과 승패를 중시한다면, 택견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문화였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도 신선한 가치를 던져준다.

     

    쇠퇴와 재발견, 무형문화재로의 부활

    그러나 택견은 근대화 과정에서 큰 위기를 맞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무술이 퍼지면서 전통적 무예와 민속놀이는 ‘낡은 풍습’으로 취급되었고, 학교 체육 역시 서구식 스포츠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택견은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일부 지역 장터에서는 여전히 명맥이 이어졌고, 이를 지켜본 연구자들과 문화예술인들이 복원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민속학자들과 체육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택견을 기록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특히 전승자들이 구술로 남긴 경험은 택견 복원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83년에는 택견이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고, 이는 택견이 단순한 과거의 놀이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문화 자산으로 인정받은 사건이었다. 이후 택견은 전승 교육과 공연, 체험 프로그램으로 확산되었으며, 결국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국제적 지위를 획득했다. 이는 택견이 한국만의 자산을 넘어, 인류 보편적 문화유산으로 확장된 것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택견 가치와 전망

    오늘날 택견은 과거의 장터 놀이를 넘어 교육·건강·관광·문화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택견을 통해 아이들이 협동심과 자기 통제력을 배우고, 성인들에게는 자세 교정과 스트레스 해소의 효과가 강조된다. 노년층에게는 유연성과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데 탁월한 운동이 되며, 이는 곧 전 세대를 아우르는 생활 무예로서 택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택견은 지역 축제나 문화 행사에서 대표적인 체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관광객들은 택견 공연을 관람하고, 직접 기본 동작을 배우면서 한국 전통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택견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공연 예술,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산업과 접목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해외에서도 택견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으며, 외국인 수련생들은 단순히 무술을 배우는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공동체 정신과 예절 문화를 함께 체험한다고 평가한다.

     

    앞으로 택견은 두 가지 방향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첫째는 생활 스포츠화다. 건강 관리와 여가 활동의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택견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생활 무예로서 확산될 수 있다. 둘째는 문화 관광 자원화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관광 상품으로 택견을 활용한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와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다. 장터에서 탄생한 놀이가 수백 년의 세월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무형문화재가 된 지금, 택견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세대와 함께 새롭게 발전해야 할 살아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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